오픈 당일날
로보토미 회사의 50일 관리도
폐허도서관의 마지막 접대도 진작에 끝낸 나는
다운로드 직후에... 서버 다운을 보았다.
이정도야 뭐, 회사 예상보다 더 많은 관심이라니 팬 입장에서야 기쁘다만...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감성들과 반비례하는
수집형 가챠겜의 기본 문법조차 되어있지 않은 코딩덩어리.
풀 더빙 스토리에 눈이 돌아가 스퍼트를 달렸지만
과금효율도 리세티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너무 높은 난이도의 스토리에 그대로 교착.
그렇게 수시간의 리세마라 이후에 직접 계정을 만들고
꾸역꾸역 막힌 부분을 뚫은 다음에는... 너프 패치가 이루어졌다.
0장 - 어두운 숲
이제 알겠어...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걸...
기억을 잃은 희곡의 주인공, 지 이름도 모른다.
메이즈러너마냥 뛰다니다가 잡혔는데, 이세계 버스가 와서 구해주었다.
이쁜 누나가 내려서는 계약(종이도 없음)에 강제사인 당했다.
짠 우리가 대신 싸워줄 용병단이에요
근데 이겨준다고는 안했지롱
전부 죽었는데요?
너가 살려야 하지롱
기억을 찾아줄게요
근데 뺑이는 쳐야하지롱
자 지금부터 느이 이름은 단테여잉?
알았어 자기소개는 해줄게
근데 여기에 멀쩡한 사람은 없지롱
황금가지 드가자~
이 숲에서 종말새를 보겠다는 기대와는 다르게, 나약한 주인공 일행이 출발한다.
1장 - 속하지 못하는
처음 게임을 켰을때의 배너 픽업 주인공,
한손이 벌레칼인 호감캐 그레고르.
열심히 분위기도 풀어보고 해도
이름이 안 외워지는 건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 옆집 아저씨.
영화 아저씨 의 주인공만큼 잘생기거나 강하지는 않지만
성우님의 친숙함과 캐릭터의 뒷이야기는 그를 마음에 깊게 박아두기에 충분하다.
고어가 당연한 세계, 죽음이 없는 것처럼 싸우는 등장인물들.
희생을 강요당하는 주인공과... 가장 믿을만한 사람의 슬픈 뒷이야기.
한명 한명씩 구체화되는 캐릭터성과
전부 다 지뢰밭인 것 마냥 사망 플래그를 꽂고 다니는 핑크머리 여성, 유리
그레고르와 비슷하게 몰락한 날개 출신이라, 내적 친밀감을 쌓게 된다.
등떠밀려 들어간 로보토미 지부 폐허, 그곳에서 그레고르는 패잔병들을 마주치게 된다.
몰락한 날개의 부산물들. 전쟁의 아픔과 결과는 모두에게 아픈 기억이 되었고,
전쟁 영웅이 되어서 선전물의 주인공일 뿐이였던 그레고르를 그들은 알아보고, 혐오해서, 싸우다 죽는다.
불안정해지는 그레고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단테, 성격을 못 죽인 수감자들,
동행하던 외부인들의 죽음과 배신. 그리고 세상에 밝혀지지도 않은 괴물들과의 싸움
황금가지에 가까워질수록 그레고르의 전쟁 ptsd가 모두를 덮친다.
그 끝에 왔지만, 마주한 것은 유리의 죽음.
단테는 그레고르에게 강하게 명령하지만, 결국 해내지 못하고...
적대 집단이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얼굴도장 찍고 떡밥도 던지고 황금가지를 훔쳐간다.
우울감과 무기력함 사이에서 그레고르는 조용히 혼자 유리를 기리고
그렇게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속하지 못하는, 걷던 길이 무너져 갈 곳도 멈출 곳도 없는 신세.
내 이야기가 생각나 더 마음이 아팠다.
개같이 굴러서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게 전부일 뿐.
입시도 군대도 다 뚫고 나왔지만 대학교에서도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러 꽤 괜찮아 보이지만... 얼마나 간절했던지.
나와 같은 신세인 사람들이 하나씩 멀어지는 모습에 심장이 가라앉는 느낌들.
그냥 사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귀한 것인지 내 마음에 다시 와닿게 되었다.
게임적으로는 1장에서 튜토리얼의 연장 보다는 한 캐릭터의 빌드업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방독면을 볼 때마다 슬퍼지겠지만, 그래도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담배를 필 것 같은 아저씨가 생각난다.
1년 전, 그렇게 림버스와 처음 만났다.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