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시간이.

 

어제가 700일이였다.

어리고 부족한 내가 누군가를 길게 만난다는게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막연히 성욕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르지만,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타인을 이렇게 깊게 만날 줄이야.

복잡하고 칙칙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말도 안 된다.

만나기 전에는 치고받고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길게 만나면서 다른 커플들이 흔히 싸우는 문제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롤하다가 몇번 고생했는데, 지금은 건전하게 즐기고 있다.

 

 

양쪽 다 적당히 상처받은 경험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만났다.

내 경우에는 어리고 못난 사람이던 과거가 있었지만, 뭐. 군대가 그렇다.

고등학생때 이성 알빠노 하던 내가 친구들에게 연애상담을 하고 있다니.

결혼 가장 먼저 하는 애들들 특징 같은 것들이 들어맞나보다.

 

 

아무런 얘기 없이 퇴근시간 일터에 쫓아가서 꽃을 쥐여줬다.

몇번 갔던 식당에 가서 먹던 메뉴를 먹었다.

 

 

이제는 헤어진다는게 무섭다.

누군가를 잃는다는게 그렇게 두렵다.
점점 어른이 되고 있다.

언제까지나 어리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구나.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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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내리는 걸까.
물이 뭉쳐서 자유낙하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하늘이 운다는 등의 상상력보다
이성을 먼저 들이밀어 버리면
주차장에 차 대야지 옷 뭐 입고 가지
같은 동심을 잃어버린 반응을 하게 될 것 같다.

비가 오는 것이 좋다.
우산이 의미없을 정도로 젖어버리든
다들 우산을 쓸 때 웃으며 후드를 덮어쓰든
천둥과 번개가 길거리의 학생을 놀리키든
상관 없다.

비가 오면 기억이 추억이 되지 않나.
하늘이 흑백이 되면 봐야 할 것들만 컬러가 된다.
이유없이 달라진듯한 기분이
잔뜩 찡그린 하늘을 처음 만나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아직도 있다.

물론 너무 울어대면 질릴 것이면서도,
하늘에서 물떨어져서 싫다는 생각보다 기대감이 크면
아무래도 상관 없어지는 것 같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아 계단을 두 번 오르내렸다.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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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닿지 않을 이상을 안고 이상하리만치 발버둥을 치는 것은
존재가 허무해서 - 따위의 무시를 받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


돌아오지 않을 열정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고 살았던 이유는,
마음보다 세상이 더 차가워져서 냉기가 계속 느껴지기 때문인 것 아닐까.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스테이지는 차갑지만 그 열기는 느낄 수 있다. 마음이 뜨거울수록 차갑게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해진다.

이 둘을 읽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얼마나 저주받은 고통이 있어야 이 축복이 새겨지는지 생각해 봤기를.

추하게도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의미도 없이, 잊혀지기 싫은' 순수한 욕심이겠다.
그래도 시간을 남겨서 거울이 되고 이정표가 되어
중요한 순간에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있기를 바라면서.


평생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살아가면서
그 고통을 반복하다 삶이 끝날 것을 감지해본 그대에게

이 발버둥이 닿아 위로가 되어
조금 더 편하게 쉬고 더 강하게 나아가기를 바라며.


우선 나 자신에게 그런 동기가 되기 위해.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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